「영화」오렌지 테엽시계를 보았다.
- 신태환
- 2017년 12월 27일
- 3분 분량
이 영화는 1973년에 상영했던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졌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영국에선 상영 금지되었다라고 유튜버들이 말하지만 잘못된 사실입니다. 흥미위주의 그들에선 그렇게 말하는게 이득인가보죠.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 주인공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하류층 사람입니다. 마약이 들어간 우유를 마시며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부하들과 함께 주정뱅이를 패고, 경쟁 갱들과 싸우며, 차를 훔치고 다니는 일상생활을 마치 GTA처럼 합니다. (...응?)
그러던 중 발견한 한 작가의 집에서 충동적으로 작가를 두들겨 패고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면서 작가의 아내를 강간합니다. 그 후 클래식 가게에서 본 두명의 미성년자를 꼬셔서 섹스를 하고 그 후 자신의 부하들이 반발하려는 것을 알자 위협을 가하다가 부하들의 함정에 빠집니다. 부하들과 함께 잘 모르는 여자를 살해하자 부하들은 도망가고 혼자서만 잡혀버렸습니다. 법원에서 14년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은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정부에서 사상범들을 처리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던 루드비코 요법에 자원을 하게 되는데 이 루드비코 요법이란 일종의 조건반사 강화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담은 필름을 보여주며 구토감을 일으키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알렉스는 폭력적인 생각을 하거나 필름의 배경음악이자 자기가 좋아하던 (조건화 과정에서 사용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들으면 구토를 일으키게 된다.
이거를 반대하던 목사가 있었는데 "이걸 하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라고 주인공을 몇번이나 설득했었으나 주인공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설득을 여러번 하였는데
"문제는 이 기술이 정말로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거야. 선함이란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이거든. 사람의 자유의지가 없다면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지." (목사)
"이 소년에게 실제 선택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불의의 순간 살고싶은 마음에 육체적 고통의 두려움이 그를 비굴하게 짝이 없는 은신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치료는 너무나 위선적입니다. 또한 그는 더 이상 선택의 능력이 없는 생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결국 이 요법을 받은 주인공은 풀려났고 자신이 없는 동안 변해버린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부모는 자기를 대신할 아들을 두었고 이를 본 주인공은 집을 나갑니다. 했던말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나는 고통스럽고, 고통스럽고 고통스러움을 겪었지만 모든 사람은 내가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되긴 바라는군요."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 (중략)"
"좋아요. 제가 여길 떠나 드리죠. 다시는 날 보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제, 혼자힘으로 살아가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양심에 가책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집을 나가는 도중 자신이 폭력을 휘두른 주정뱅이가 사람들을 모아 알렉스에게 린치를 가하며 하필 구원을 요청한 경찰은 자신을 배신한 부하들이었습니다. 알렉스에게 적개심을 느낀 부하들은 알렉스를 한적한 시골에 끌어다가 놓고 신나게 물고문을 하며 구타를 하게 되는데 결국 자기방어도 못하고 죽도록 얻어맞은 알렉스는 방황하던 중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도 하필이면 그 집은 자신이 망쳐놓은 작가의 집이었고 작가는 폭력으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어 있었고, 작가의 아내는 윤간의 충격으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작가는 알렉스를 잘 대해 주지만, 알렉스가 목욕하면서 부르던 Singing in the Rain을 듣고 자신의 원수인 것을 알게 되며, 그리고 우연히 알렉스가 9번 교향곡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알게 되고 와인에 약을 타서 알렉스를 기절시킨 다음 2층 방에 가두고 아래층에서 9번 교향곡을 크게 틀어 놓습니다. 결국 알렉스는 괴로워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창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시도를 하지만 죽지 않고 병원신세를 지게 됩니다. 병원에서의 긴 회복을 거치는 동안 루도비코 요법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알렉스는 역 루드비코 요법을 받게 된다. 요법이 풀린 알렉스에게 루드비코 요법을 선택하게 했던 내무부 장관이 찾아와 정중한 사과와 함께 9번 교향곡이 연주되는 거대한 오디오를 선물로 줍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편에 서면 일자리(+충분한 급여)를 주겠다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알렉스는 요법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섹스하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완전히 치료되었어."라며 영화는 끝난다.
이 길고 긴 영화는 무엇을 나타내고 싶었을까요?
폭력은 안된다? 아뇨. 이것보다 좀 더 심오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지금봐도 여러분에게 충격을 줄만큼 잘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전 이 영화를보고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화학적 치료가 재사회화에 대한 올바른 치료인가?"
"죄를 지었던 죄수들이 저런식으로 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건가?"
등등 당시 죄수의 인권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1973년 당시 죄수들의 인권은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어느 나라든지 마찬가지였고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인지를 하실겁니다. 친구들은 처음부터 경찰이였었고 자기는 범죄자였었다면 이는 곧 부패한 경찰을 나타내는 온상입니다.
현재에서는 이런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었지만 지금의 가장 큰 논란은 이겁니다.
"성 범죄자" 라는 키워드를 놓고 생각을 해 본다면
"물리적 혹은 화학적인 거세가 이 사람을 재사회화를 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방법인가?"
저는 이것보다 좀 더 인도적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을까 지금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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